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빙그레 이글스 (문단 편집) == 1988 ~ 1992 시즌 == 초창기의 6개 구단에 비해 늦게 창단된 구단임에도 신인 선수들이나 타팀에서 전력보강 차원으로 영입한 선수들의 포텐셜이 폭발하면서 1988~1992년 '''5년동안 무려 4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'''[* 같은 기간 동안 '''한국시리즈 3회 우승팀인 [[해태 타이거즈]]보다도 많다.''']하는 등 신흥 강호로 떠올랐다. 1993년과 94년에도 각각 승률 0.500과 0.524를 기록했다. || [[파일:external/c801058dc18d45d159ed36f43bb3e9b9eaa72512a473cb8eed4949a66362a187.jpg|width=100%]] || || 1989년 올스타전에서 찍은 사진. 왼쪽부터 현역 시절의 [[유승안]], [br] [[이강돈]], 당시 신인이었던 [[송진우(야구)|송진우]], [[한희민]].[* 출처: 한화 이글스] || 빙그레는 창단 당시 6개 구단 보호선수 외 특별지명 선수들 중 [[삼성 라이온즈]] 출신의 선수들을 많이 지명했는데, '''또 그걸 삼성이 웬만큼 다 수용했다.''' 그런만큼 삼성이 많이 줄 수 있던 여력이 있기도 했다. [[경북고등학교 야구부|경북고]], [[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|대구상고]]를 중심으로 한 대구 팜은 1970~1980년대에 고교대회에서 엄청난 성과를 냈었고, 그에 비례하여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다. 빙그레 초창기에 대구 출신 선수들이 많았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. 마침 단장도 그쪽 구단서 일한 데다 [[배성서|창단 감독]]도 그쪽 동네 사람이었다. 특히 [[김영덕]] 감독의 지휘 아래 창단 2년 뒤인 1988년부터[* [[한국프로야구/1988년 포스트시즌|1988년 포스트시즌]]은 신생팀이 창단 후 처음으로 나간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승리를 거둔 역대 최초 사례였다. 역대 신생팀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도전 사례 중 시리즈 승리를 거둔 것은 1988년 빙그레의 플레이오프 승리와 2003년 [[SK 와이번스]]의 준플레이오프 승리 뿐이다. 나머지(1996년 쌍방울 PO, 2013년 넥센 준PO, '14년 NC 준PO)는 모두 첫 도전에서 실패했다.] 1992년까지 1990년 시즌을 제외한 [[KBO 한국시리즈]]에 4번 진출하였으며 1989년, 1992년에 [[페넌트레이스]] 1위도 2번이나 차지했다. 순수 신생팀 기준 창단 이후 3시즌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은 KBO 신생팀 사상 최단 기간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이다. 그 다음이 창단 4시즌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2003년의 [[SK 와이번스]]와 2016년의 [[NC 다이노스]].[* [[MBC 청룡]]의 역사를 그대로 이어받았은 LG 트윈스가 [[1990년]]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우승까지 차지 했지만 한국야구에서 창단은 순수 창단 말고도 인수 때에도 창단이라고 하는 등 범위가 매우 넓다. 그래서 순수 신생팀이 아니었으므로 LG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.][* 또한 SK는 2000년 초에 해체된 [[쌍방울 레이더스]]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순수 신생팀이라 보기는 어렵다.] || [[파일:/image/018/2015/12/21/PS15122100140g_99_20151221131603.jpg|width=100%]] || || [[1989년 한국시리즈]] 이후 준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는 [[송진우(야구)|송진우]].[* 출처 한화 이글스] || 허나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던 상대가 의외로 강했기 때문에 결실은 맺지 못했다. [[해태 타이거즈|해태]]의 한국시리즈 우승 중 3번이 빙그레 상대였으며, [[1992년]]에는 [[박동희(야구선수)|박동희]]와 [[염종석]]이 있던 [[롯데 자이언츠|롯데]]에 농락당했다. 사실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[[염종석]]보다 [[박동희(야구선수)|박동희]]의 활약이 더 컸었다. [[염종석]]은 [[장어]] 먹고 탈이나 4차전에서 강판당하기도 했다. 참고로 1992년 정규시즌의 81승 43패 2무, 팀승률 0.651은 당시 정규시즌 최다승 신기록이었으며[* 현재 단일시즌 최다승 기록은 2016년 [[두산 베어스]]의 93승이다.], 당해 정규시즌 2위였던 71승 54패 1무의 [[해태 타이거즈]]와의 게임차는 10.5 경기였다.[* 승차만 보면 굉장히 독주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아니었다. 5월까지 14연승에 8할 승률로 우승을 예약하는 듯 했지만 연승 후유증과 함께 두 달 가량 고전하며 해태, 롯데의 추격을 허용, 8월까지는 나름 해태, 롯데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. 롯데가 3위가 굳어지자 주축들을 빼고 해태가 막바지 부진하면서 승차가 크게 벌어졌다. 해태전은 한때 상대전적에서 3승 12패까지 밀리기도 했었다.] [[http://ko.wikipedia.org/wiki/1992%EB%85%84_%ED%95%9C%EA%B5%AD%ED%94%84%EB%A1%9C%EC%95%BC%EA%B5%AC|'92년 정규시즌 최종 순위표]]또는 [[한국프로야구/1992년|1992년]]의 정규시즌 최종순위 참조. 그리고 빙그레 자체도 페넌트레이스 때와는 다르게 한국시리즈에서는 약한 면모를 보였으며, 중요한 고비에서 치명적인 실책을 범하는 등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. 예를 들면 1989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[[장종훈]]의 알까기와 1991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송진우의 실책 같은 게 대표적이다. 그리고 2연속 준우승을 2번이나 달성한 팀이다. 그래서 최초의 [[한국시리즈]] 우승은 [[한화 이글스]]로 바뀐 후 [[1999년 한국시리즈|1999년]]에 이루게 된다. [[이강돈]], [[장종훈]], [[이정훈(1963)|이정훈]], [[고원부]], [[강정길]] 등을 중심으로 하는 공격 야구를 펼쳤으며, 이는 [[한화그룹]]의 화약 제조업을 본뜬 '''[[다이너마이트]] 타선'''이라 불리며 빙그레 이글스의 상징이 되었다. 또한 [[이상군]], [[한용덕]], [[한희민]], [[송진우(야구)|송진우]] 등이 중심을 이루었던 투수진도 리그 상위권이었다.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했지, 사실상 이글스 프랜차이즈의 '''리즈 시절'''이다. 여담으로, 홈런왕 [[장종훈]]과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영향으로 [[해태 타이거즈]]와 함께 당대 어린이팬들이 많았던 팀이기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